사이에서의 유희 - photography vs 사진(寫眞)
● 부드럽게 흔들리는 이미지의 풍경과 인물을 표현해 온 권두현은 이번 작업에서『reformed sight』을 표제로 자신의 작업에 반문을 던지며 사진의 본래적 의미에 천착한 듯 '빛'을 통해 그려진 풍경을 제시한다. 흑색조의 바탕위에 무작위(無作爲)로 유영하는 흰색의 밝은 섬광이 생성한 이미지는 우리가 가진 기억의 특정형태와 유사성에 의해 다양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진 이 사진작업은 빛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photography 본래적 속성에 충실하다. 반면에 기록된 이미지는 실제적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의미의 사진(寫眞)에는 위배되는 대상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통해 전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게 하는 모순적 관계를 보여 준다. 즉, 사진이라는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유희에 빠진다.
빛의 기록으로 회귀(回歸)와 사실재현의 일탈 사이에서
● Photography는 photo(빛)으로 graphy(기록)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진의 물리, 화학 측면의 매커니즘이다. 이번 신작에서 작가 권두현이 제시하는 작업은 이러한 물리, 화학측면에서 빛의 강조만이 아니다. 창작동기 전반을 '빛'이라는 의미에 부여하며 빛과의 사투라는 사진이라는 본질에 집착하고 있다. 집착은 블랙에 가까운 어두운 배경을 바탕체로 생성하며 하얀 섬광과 같은 빛의 움직임에 초점이 닿아있다. 암흑을 배경으로 마치 네온스틱이나 손전등의 빛으로 이미지를 그려낸 듯 신비로운 풍경이 표면에 기록되어 있다. 흔들린 대상들의 빛이 기록된 그의 작업엔 실제 대상의 정보와 단절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무작위(無作爲)적으로 그려진 빛이 위치해 있지만 이러한 흔들린 이미지에서 빛은 어느새 폭포가 있는 풍경이 되고, 바다가 되고,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이 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관성은 가만히 살펴보면 기록된 빛이 연출하는 이미지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와 유사에서 오는 인식의 문제로 귀착되며, 있는 그대로를 옮긴다는 사진(寫眞)이라는 의미에서는 일탈된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론 그릇된 이러한 충돌을 담고 있는 점이 작가가 추구했던 개념을 더욱더 견고히 한다고 보여 진다.
● 작가는 '나에게 무엇을 재현했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작업결과로 제시된 이미지가 관람객에게 제각각 어떻게 보여 지고, 읽혀지느냐가 나에겐 의미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애초부터 권두현은 사실 재현의 정의보다는 재현된 이미지의 인식이 주된 관심이었고 이러한 의미의 충돌이나 이미지의 불명확함을 통해 야기되는 충돌과정 에서 생성되는 현상을 유희하는 것이라 보여 진다.
사진과 회화의 사이에서- 유사성의 경계와 독창성의 추구
● 사진은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다. 이후 프린트까지의 과정에서의 조작은 회화에 비해 제한된 매커니즘을 통해 진행된다. 제한된 메카니즘을 따르기 때문에 유사한 이미지의 범람은 사진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유사이미지라 하더라도 접근의 개념이 어떠한가가 중요시 되지만, 창작된 작업의 결과가 타 이미지와 유사하다면 어쨌든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회화에 비해 창작의 결과물을 제작하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짧은 사진에서 빈번히 유사이미지를 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회화에 비해 창작자의 개입이 제한적이고 간접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 낳는 결과이다.
● 작가 권두현의 사진작업도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 준 흔들린 이미지의 예는 tv광고나 잡지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사진과 회화에서도 그 유사한 예를 빈번히 접했고 앞으로도 접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작가는'다른 사람이 이러한 개념을 작업하기 전에 빨리 작업해서 보여주지 못하면, 표절이 되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 부분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창작자로서 숙명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독자성의 확보와 깊이일 것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독자성과 깊이에 대해 침잠한 결과, 이전 작업의 흔들린 이미지의 형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획득했다. 기록된 본연의 대상과 절단된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을 통해 관람자는 새로운 이미지와 연계된 유사의 연상을 통해 그 대상을 추측한다. 이 추측은 물론 새로운 내러티브도 수반된다. 사진이 기록된 대상을 떠나 새로운 대상으로 창작되어 대치되는 것은 회화의 영역에 가깝다. 사진의 대표성이라 할 수 있는 사실적 기록의 표기인 셈이다. 사진의 프로세스 속에서 회화성을 확대해가는 이러한 시도가 그의 작업에서 타 작업과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 요소이다. 사진과 회화라는 두 장르의 특성 사이에서의 교란이 작가에게는 독자성을 획득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유희이다.
● 부단히 흔들린 이미지를 통해 일관되게 '존재의 모호성'을 추구해왔던 작가 권두현. 그는 이번 신작을 통해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대한 물음을 선택하면서 '깊이'라는 것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명료한 이미지를 떠난 흐려짐은 그간 그의 작업에 다양한 의미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부유하듯 흐려진 이미지처럼 표피적이고 명료하지 못함에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담기위해 노력한 그의 사투가 곧 유희이다. 과거의 작업을 토대삼아 빛의 흔들림이 만들어낸 'reformed sight'에 관련된 개별적 인식이 작가에겐 답이 되지 않겠는가? x 와 y라는 미정계수 사이에서 또 다른 유희를 위해. ■
글: 이정훈
2008년 12월 20일
갤러리 터치아트_GALLERY TOUC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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